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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공론

"문화도시 여주 만드는 불쏘시개 되렵니다"

이우진 기자   2018-07-02 06:00:55

월급쟁이에서 사장과 회장으로, 화가에서 이번에는 미술관 관장으로 인생의 마지막 장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미술의 불모지였던 여주에 첫 미술관을 세운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림이 좋아 제약회사 시절에도 가난한 화가들의 그림을 모으고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매일 새벽 양치도 하지 않고 화실로 나선다는 고려제약 박해룡 회장. 여주를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그를 <약사공론>에서 만나봤다.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박 회장의 손에는 검은 유화용 물감이 묻혀져 있었다.

박 회장은 1957년부터 종근당에서 26년동안 있었다. 그가 있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까지 약진했는데 까지 가장 흥했는데 종근당의 창업주인 고 이종근 회장의 동생 이종문 전무(현 암벡스벤처그룹 회장)와 함께 비참, 브리스톨마이어스, 파크데이비스, 글락소, 신텍스, 로슈, 베링거만하임 등의 기술 제휴를 통해 매상을 늘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처음으로 테트라사이클린, 테라마이신 등의 원료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며 제약업계 기술발전에 일조해왔다.

이후 종근당산업 사장을 지내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그 때, 이종문 전무의 연락이 왔다. 자신이 세운 고려제약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는 것. 그렇게 박 회장은 자신의 회사가 된 고려제약을 키웠다. 그리고 70의 나이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꿈꿨던 것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학창시절 그림을 그리던 그의 고교시절, 실향민 출신의 화가 김진명 화백이 미술반 담당 교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김 화백의 미대 진학 권유를 뿌리치고 박 회장은 가난한 살림을 해결하기 위해 약대에 들어갔다. 그렇게 50년이 지나 그 소년이 다시 붓을 잡게 된 것이다.

지금도 새벽 네시에 일어나 그림을 그린다는 박 회장은 "매일 아침 3시간씩, 주말에는 12시간씩 그린다"며 "동생에게 그림 그리는 기법 외에는 배운 바가 없다. 선 하나 점 하나의 표현을 배워가면서 그동안 그림을 그려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니 나의 그림이 쌓여갔다. 모았던 그림 300여점을 합치니 약 600여점의 그림이 있었다.

미술관을 지어 모두가 함께 그림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찰나에 눈에 띄었던 것은 경기도 여주. 여주에는 아직까지 미술관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여주에는 자신이 피난을 와 생활했던 경험과 그곳에서 지금까지 머무르는 친척들이 있었다.

그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숨쉬는 여주는 문화적 가치가 있고 옛부터 (문화적 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정작 현대에 크게 내세울 것은 많지 않다"며 "한강을 '여강'이라 부를 정도의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정작 도시에는 미술관이 하나 없는 것이다. 문화적 이바지를 하기 위해 시 제1호 미술관을 여주대 쪽에 지으려 한다"고 밝혔다.

내년 봄 개관을 앞두고 있는 미술관 조감도


그가 그동안 모은 100억원을 들여 짓는 1000제곱미터(3000평 규모)의 미술관에는 조경, 조각전시와 함께 서양·동양의 그림이 전시된다. 특히 수익이 크지 않은 미술관 내 큐레이터 등을 포함한 제반인력으로 매년 1억 이상의 금액이 소모됨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고려제약의 돈은 한푼도 쓰지 않고 그동안의 자기재산으로 이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미술관은 연말 준공을 마치고 내년 4월 즈음에 개관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이와 함께 특별 전시관과 어린이 미술 교실을 운영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주의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미술가가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여주에 만들겠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미술관 건립은) 내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을 운영하고 (여주가) 문화도시로 가는데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 내 목표"라며 "여기에 여주 근처의 예술인들을 모으고, 논의를 하면 자연스럽게 여주가 문화도시로서 개발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관 운영 이외의 수익은 불우한 미술가와 어린이 미술 교육 등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는게 꿈"이라고 말했다.